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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흥남철수작전 전말 당시 사진 알몬드 선장 후일담 김치 문재인 대통령 부모님 81회

by 처절한 인생 2023. 6. 1.

023년 6월 1일 방영되는 꼬꼬무 81회에서는 "푸른 눈의 선장과 김치, 기적의 '해상철수작전'" 이라는 부제로 흥남철수 작전에 대해 다룹니다. 이 작전은 1950년 6.25 전쟁 당시, 북한의 흥남에서 철수를 결정하여 흥남에서 부산까지 배를 타고 10만 명이 넘는 대규모의 인원이 철수한 작전을 이르는 것으로, 이 대피 때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모님이 철수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 난리통에 그 배에서는 5명의 생명이 태어났고, 미군들은 이들을 김치라고 이름 붙여주었답니다. 흥남철수작전의 전말과 당시 사진과 영상, 문재인 대통령의 후일담과 선장들의 그 후 일생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꼬꼬무 흥남철수작전 전말 81회

 

 

 

 

 

꼬꼬무 흥남철수작전 전말

 

1950년 11월 말, 유엔군은 미 10군단에게 함흥-흥남 지역으로 후퇴할 것을 명령하였고, 장진호 일대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를 당하자 12월 8일 흥남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시 함흥과 흥남 일대의 남쪽으로는 모두 중공군 수중에 들어간 상태라 육로로 대피하지 못하고 해상으로 대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2월 15일 미 제1해병병사단을 시작으로 미10군단 전 병력은 해상을 통해 부산으로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이 때 많은 피난민들도 부두에 모였습니다. 미군은 피난민을 데리고 가면 스파이의 침투도 걱정되는 데다가 시간을 지체하게 되고 물자를 많이 실을 수 없기 때문에 회피하는 입장이었는데, 1군단장 김백일 장군 등 지휘관들이 "피난민을 버리고 간다면 차라리 우리가 걸어서 후퇴하겠다"며 극렬하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결국 미10군단 사령관 알몬드 장군은 남는 자리가 있으면 피난민을 태워도 된다고 동의하게 되는데, 이렇게 10만 명의 피난민이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꼬꼬무 흥남철수작전 전말

 

 

 

메러디스 빅토리호

 

그렇게 철수하게 된 배 중 메러디스 빅토리 호가 있었습니다. 이 배는 건조된 지 5년 된 7,600톤의 수송선으로, 항공유를 잔뜩 싣고 있던 배였기 때문에 위험하여 다른 배들이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배의 라루 선장은 전혀 망설임 없이 피난민을 태우기로 결정하였는데, 무려 1만 4천명의 피난민이 승선하였습니다. 이에 가장 큰 규모의 구조 작전을 수행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게 됩니다. 

 

꼬꼬무 흥남철수작전 전말꼬꼬무 흥남철수작전 전말

 

 

소중한 생명이 태어나다. 기적의 김치 파이브.

 

이 좁은 배에서 1만 4천 명이나 되는 피난민이 탔다 보니 새로운 생명도 5명이나 태어났습니다. 이에 미군들은 김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김치1,2,3,4,5로 불리었죠. 훗날 김치5는 거제도에 사는 이경필 씨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거제도에 거주하면서 동물병원을 경영하는 수의사가 되었다고 하네요. 김치 1은 이북에 남은 형과 누나에게 피해가 갈까봐 인터뷰를 거절하였으나 서울에 거주하는 손양영 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꼬꼬무 흥남철수작전 전말

 

 

 

 

흥남철수작전 당시 사진과 영상

 

미군의 작전이었던 만큼 당시의 사진과 영상도 어느정도 남아 있는 편입니다. 마지막 배가 떠나면서 남아있는 물자를 중공군에게 주지 않기 위해 모든 물자들을 다 폭발시켜버렸는데요, 10만 명은 피난에 성공했지만 흥남에는 비슷한 규모의 피난민들이 떠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고 하네요. 나중에 피난한 사람의 인터뷰에 따르면 고향으로 돌아가도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탄압을 받고 행방불명되는 일이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사진과 영상, 문재인 대통령의 후일담, 영웅들의 그후 일생에 관하여는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사진 클릭)

 

꼬꼬무 흥남철수작전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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